유엔저널 김태연 기자 | 한국 외교가 안보 주권 확보와 경제안보 재편이라는 두 개의 중대한 과제를 동시에 마주하고 있다.
23일 외교부 정례브리핑에서는 ▲핵추진잠수함(SSN) 확보를 위한 한미 원자력 협력 협상 ▲미국 주도 AI·첨단기술 공급망 재편 ▲우크라이나 전쟁 과정에서 발생한 북한군 포로 문제 등 향후 대한민국 외교의 방향을 좌우할 핵심 현안들이 집중적으로 다뤄졌다.
특히 외교부가 한미 원자력 협력 협상과 관련해 "형식에 구애받지 않는 신축적 접근"을 언급하면서 연내 가시적 성과 도출 가능성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 "형식보다 실질"… 한미 원자력 협력 협상 속도
이날 가장 주목받은 사안은 한미 원자력 협력 협상이었다. 외교부는 농축·재처리 문제를 비롯해 핵추진잠수함 연료 조달 및 건조 방식 등을 포함한 협의를 연내 성과 도출을 목표로 추진하고 있다고 밝혔다.
특히 협상 형식에 대해 "매우 신축적"이라는 표현을 사용하며 기존의 전면적 협정 개정 방식에만 얽매이지 않겠다는 입장을 시사했다.
이는 미국 의회의 비준이 필요한 한미 원자력협정 전면 개정보다는 별도 약정이나 행정협정, 공동성명 등 보다 유연한 방식의 합의 가능성을 열어둔 것으로 해석된다.
외교가에서는 정부가 법적 절차의 완결성보다 한미 간 정치적 합의와 협력 의지를 우선 확보하는 전략을 추진하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다만 미국 의회의 입장은 여전히 변수다. 최근 미국 상원의 국방수권법(NDAA) 논의 과정에서는 한국의 핵잠수함 확보 필요성에 공감하면서도 행정부 차원의 영향평가 보고서를 요구하는 조항이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동맹 강화와 핵비확산 원칙 사이에서 미국이 여전히 신중한 태도를 유지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결국 정부가 목표로 하는 '연내 타결'은 전면적 제도 개정보다는 공동 로드맵이나 정치적 합의 도출에 무게가 실릴 가능성이 높다는 전망이 제기된다.
■ '팍스 실리카' 참여 본격화… 경제안보 시대의 선택
외교부는 김진아 제2차관이 미국 워싱턴에서 열리는 '제2차 팍스 실리카(Pax Silica) 서밋'에 참석한다고 밝혔다.
팍스 실리카는 미국 국무부가 주도하는 AI·반도체·핵심광물 공급망 협력체로, 첨단기술 공급망을 중심으로 한 새로운 경제안보 질서 구축을 목표로 하고 있다.
표면적으로는 공급망 안정과 기술 협력이 목적이지만, 실질적으로는 중국 의존도를 줄이고 미국 중심의 첨단기술 생태계를 구축하려는 전략적 성격이 강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특히 미국이 추진 중인 핵심 광물 가격하한제(Floor Price)는 단순한 시장정책을 넘어 경제안보 전략의 일환으로 해석된다.
한국 역시 반도체와 배터리 산업의 공급망 안정이라는 이점을 얻을 수 있지만, 최대 교역국인 중국과의 관계도 고려해야 하는 복합적인 과제를 안고 있다.
전문가들은 향후 한국이 미국과의 안보·기술 협력을 강화하면서도 중국과의 경제 관계를 안정적으로 관리하는 '전략적 균형 외교'가 더욱 중요해질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 북한군 포로 문제, 한·우크라이나 협력의 새 변수
오는 30일 예정된 한·우크라이나 외교장관 회담에서는 북한군 포로 문제가 주요 의제로 논의될 전망이다.
외교부는 안드리 시비하 우크라이나 외교장관의 방한을 계기로 관련 협의를 진행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정부는 북한군 포로가 대한민국 헌법상 국민에 해당하는 만큼 한국행을 희망할 경우 수용한다는 기존 원칙을 재확인했다. 또한 본인의 자유의사에 반하는 러시아 또는 북한으로의 강제송환은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도 거듭 강조했다.
만약 북한군 포로의 국내 이송이 현실화될 경우 북한과 러시아의 반발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으며, 향후 우크라이나와의 안보·방산 협력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포로의 신변 안전과 가족 보호 문제까지 함께 고려해야 하는 만큼 매우 민감한 외교 현안으로 평가된다.
■ 중국의 우려와 한국의 반박… 심화되는 신냉전 구도
브리핑에서는 최근 중국이 한미·미일 확장억제 협력 강화에 대해 우려를 표명한 데 대한 정부 입장도 제시됐다.
외교부는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이 지속적으로 고도화되는 상황에서 한미 확장억제는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보호하기 위한 정당한 방어 조치라고 강조했다.
또한 한미 확장억제 협력이 핵확산금지조약(NPT) 체제와도 완전히 부합한다는 점을 설명하며 중국 측의 비판에 정면 대응했다.
외교가에서는 이러한 논쟁이 한미일 안보협력 강화와 북중러 전략 협력 심화가 맞물리는 신냉전 구도의 단면을 보여주는 사례라고 분석하고 있다.
■ 안보와 경제가 결합된 외교의 시대
이번 외교부 정례브리핑은 단순한 현안 설명을 넘어 대한민국이 직면한 외교 환경의 변화를 보여줬다.
핵추진잠수함 확보를 위한 원자력 협력, AI와 반도체 공급망 재편, 북한군 포로 문제, 그리고 미·중 전략 경쟁 속 균형 외교까지 모두 안보와 경제가 긴밀히 결합된 새로운 외교 시대를 상징하고 있다.
향후 연내 한미 원자력 협상 결과와 팍스 실리카 참여 확대, 한·우크라이나 협력 진전 여부가 대한민국 외교의 중요한 분수령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