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엔저널 이존영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의 프랑스 국빈방문이 한–프랑스 수교 140주년을 맞아 양국 관계를 안보와 경제, 첨단기술, 원자력, 문화, 미래세대 교류까지 아우르는 ‘미래 전략협력’의 단계로 확장하는 전환점이 됐다.
특히 지난 4월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의 국빈방한에 이어 불과 5개월 만에 양 정상의 상호 국빈방문이 완성되면서 정상 간 신뢰와 유대가 한층 공고해졌다는 평가다.
이번 방문에서는 국방·항공·AI·반도체·양자·원자력·산업경쟁력·지식재산·우주·문화 등 미래 핵심 분야에서 협력을 구체화하는 성과가 이어졌다. 경제·문화계 주요 인사들도 대거 동행해 정상외교의 성과를 민간 협력과 투자로 연결하는 계기를 마련했다.
개선문에서 엘리제궁까지…프랑스의 각별한 국빈 예우
이 대통령은 현지시간 9월 8일 파리에서 프랑스 국빈방문 공식 일정을 시작했다.
첫 일정으로 개선문 아래 무명용사의 묘에 헌화한 뒤 국빈 환영행사에 참석했다. 프랑스 측은 개선문과 샹젤리제 거리, 엘리제궁으로 이어지는 프랑스를 대표하는 공간에서 환영행사를 마련했다.
이 대통령은 엘리제궁에서 마크롱 대통령과 약 2시간 동안 단독 오찬을 갖고 양자 관계와 국제정세 등에 대해 폭넓게 의견을 교환했다. 이어 양국 대표단이 참석한 확대 정상회담을 열고 양국 관계 발전을 위한 구체적인 협력방안을 논의했다.
양 정상은 양자 현안뿐 아니라 호르무즈 해협 상황과 우크라이나 전쟁 등 주요 국제 현안에 대해서도 의견을 교환하며 글로벌 전략적 동반자로서의 협력 범위를 넓혔다.
8개 협정·MOU…정상외교를 실질협력으로
정상회담 직후 양 정상 임석 아래 협정·양해각서(MOU) 교환식이 열렸다.
국방, 항공, AI·반도체·양자, 원자력, 산업경쟁력, 지식재산, 우주, 문화협력 등 분야에서 8개의 협정 또는 양해각서가 체결·교환됐다.
삼성전자와 프랑스의 미스트랄 AI 간 투자협약 체결식도 진행됐다. 양사는 삼성전자의 반도체 분야 노하우를 보호하면서 활용할 수 있는 삼성전자 전용 AI 모델 개발을 추진하기로 했다.
양 정상은 이후 엘리제궁 맞은편 마리니 영빈관으로 이동해 양국 기업 20개사가 참여한 한–프랑스 비즈니스 라운드테이블에 참석했다.
이 자리에서는 첨단산업을 비롯한 양국 기업의 상호 시장 진출과 투자, 산업협력 확대 방안이 논의됐다.
국방·안보 협력 강화…군사정보 보호체계 고도화
이번 정상회담의 첫 번째 주요 성과는 지난 4월 격상된 양국의 ‘글로벌 전략적 동반자 관계’를 국방·안보 분야의 실질적인 협력으로 구체화했다는 점이다.
양국은 2001년 체결된 군사비밀정보보호협정을 개정해 프랑스의 새로운 비밀분류체계를 반영하고 군사비밀 열람 제한 권한에 관한 규정을 신설하는 등 군사정보 보호체계를 강화했다.
또 현재 양국 군 사이에 문안 협상이 진행되고 있는 상호군수지원협정을 조속히 체결하는 데 뜻을 모았다.
협정이 체결되면 양국 군이 필요로 하는 물자와 용역 등을 보다 신속하게 상호 지원할 수 있어 군수협력의 효율성을 높일 것으로 기대된다.
방위산업에서도 프랑스의 원천기술과 한국의 생산역량을 결합하는 상호보완적 협력을 확대하기로 했다. 한국 기업과 에어버스를 비롯한 프랑스 주요 기업 간 기존 협력을 토대로 새로운 공동사업을 발굴할 가능성도 커졌다.
AI·반도체·양자…첨단기술 동맹 강화
경제·산업 분야에서는 AI와 반도체, 양자기술 등 첨단산업 협력이 핵심 성과로 꼽힌다.
이번에 체결된 AI·반도체·양자 분야 MOU는 지난 4월 체결된 협력의향서를 한 단계 구체화한 것으로, 양국 AI 스타트업의 상호 시장 진출과 기업·연구기관 간 공동 연구개발(R&D)을 촉진하는 기반이 될 전망이다.
특히 삼성전자와 미스트랄 AI 간 협력은 한국의 반도체 기술력과 프랑스의 AI 기술을 연결하는 대표적인 협력 사례라는 점에서 주목된다.
산업경쟁력과 비즈니스협력, 지식재산 분야에서 마련된 협력문건 역시 첨단·미래산업에서 양국 기업의 교류와 투자를 활성화하고 상호 시장 진출을 확대하는 제도적 기반을 마련했다.
경쟁 넘어 협력으로…한–프랑스 원자력 협력 새 틀
원자력 분야에서도 의미 있는 진전이 이뤄졌다. 한국과 프랑스는 1980년대 프랑스가 한국의 한울 1·2호기 건설에 참여하는 등 오랜 원자력 협력의 역사를 갖고 있다.
현재 국제 원전시장에서 일정 부분 경쟁하고 있지만 양국 정상은 각자의 강점을 활용한 상호보완적 협력 잠재력이 크다는 데 공감했다.
이에 따라 지난 4월 마크롱 대통령이 제안한 민간 원자력 고위급 대화를 출범시키기로 합의했다.
1982년부터 공공부문의 원자력 협력을 조율해 온 한–불 원자력공동조정위원회와 함께 민간 분야까지 아우르는 새로운 협력의 틀이 마련된 것이다.
한국수력원자력과 프랑스 오라노 간에도 새로운 협력의정서가 체결됐다. 이를 통해 한국 측은 서구권 신규 농축 공급원을 확보해 원전 연료 공급망 다변화 가능성을 확대하고, 양국은 차세대 원자로 안전기술 개발에서도 협력을 추진하기로 했다.
바이오·우주까지 미래산업 협력 확대
바이오 분야에서는 한국생명공학연구원이 프랑스 연구기관 및 기업들과 3건의 MOU를 체결해 공동연구의 기반을 확대한다.
친환경 소재 개발과 기후변화에 대응하는 차세대 작물기술, 난치성 질환 신약 개발 등 미래세대와 직결된 분야에서 공동연구가 추진될 예정이다.
여기에 우주와 지식재산, 산업경쟁력 분야까지 협력의 범위가 확대되면서 양국의 경제협력이 전통산업을 넘어 미래 성장동력 중심으로 빠르게 재편되는 모습을 보였다.
항공협정 개정…청년·과학기술 교류도 확대
양국 국민과 미래세대를 위한 교류 기반도 강화됐다. 개정된 항공협정에는 공정경쟁 조항이 새롭게 도입됐으며 항공편명 공유 등 항공사 간 협력의 제도적 기반도 정비됐다. 환경·안전·보안 관련 규범도 현대화해 양국을 오가는 항공서비스의 안정성을 높이는 기반을 마련했다.
워킹홀리데이 연령 확대와 한국어 언어보조교사의 프랑스 파견, 양국 과학기술 우수대학 간 교류 등을 통해 청년들의 상호 진출 기회도 확대한다.
초국가범죄 대응을 위해 양국 경찰 간 정보교환과 공동작전 수행을 위한 제도적 틀도 마련했다.
마크롱 대통령, 이 대통령에게 ‘레지옹 도뇌르 대십자 훈장’
이번 국빈방문의 상징적인 장면은 국빈만찬에서도 이어졌다. 마크롱 대통령은 국빈만찬에 앞서 이재명 대통령에게 프랑스 최고 권위의 ‘레지옹 도뇌르 대십자 훈장’을 수여하고, 김혜경 여사에게는 ‘국가공훈 대십자 훈장’을 수여했다.
한–프랑스 우호관계 발전에 대한 기여를 평가하고 대한민국 정상 부부에게 최고 수준의 예우를 표한 것이다.
국빈만찬에는 정부 관계자뿐 아니라 경제·문화계 주요 인사들이 참석해 수교 140주년을 맞은 양국 관계의 폭과 깊이를 보여줬다.
경제계에서는 류진 한국경제인협회 회장과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등 주요 기업인이 참석했으며 문화계에서는 콘텐츠·영화 분야 관계자와 가수 화사 등이 함께했다.
특히 만찬 말미에 진행된 화사의 단독 공연은 양국 정상과 각계 주요 인사들에게 K-문화의 매력을 알리며 정상외교에 문화외교의 의미를 더했다.
“마크롱 대통령과 진정한 ‘꼬뺑’ 된 것 같다”
이 대통령은 국빈만찬에서 이날 오전 무명용사의 묘 헌화 과정에서 지평리 전투에 참여했던 프랑스 참전용사들을 만난 사실을 언급하며 “눈물이 왈칵 솟았다”고 특별한 감회를 전했다.
이어 한–프랑스 수교 140년 동안 쌓아온 우정과 연대를 바탕으로 원자력·AI·반도체·양자기술·핵심광물·문화·인적교류 등 미래 협력의 지평을 넓혀가자고 강조했다.
특히 이번 방문을 통해 마크롱 대통령과 ‘빵을 나누는 친구’를 뜻하는 진정한 ‘꼬뺑(copain)’이 된 것 같다며 양국의 영원한 우정과 함께 만들어갈 미래를 기원했다.
청자 가야금·한강 작품…선물에도 ‘140년 우정’ 담아
정상 간 선물에도 양국의 문화와 두 정상의 인연이 담겼다. 이 대통령은 마크롱 대통령에게 한국 전통 현악기 가야금을 청자로 축소 제작한 ‘청자 가야금’을 선물했다.
또 지난 국빈방한 당시 마크롱 대통령이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소감에 등장하는 ‘금실’을 한–프랑스 관계에 비유했던 것을 떠올려 한강 작가의 『작별하지 않는다』, 『소년이 온다』, 『채식주의자』의 한국어·프랑스어본을 전달했다.
브리지트 마크롱 여사에게는 피아니스트 조성진이 연주한 ‘라벨 피아노 전곡집’과 삼베에 옻칠과 자개를 더한 나전 클러치백을 선물했다.
‘수교 140년’ 넘어 새로운 한–프랑스 미래 100년으로
이번 프랑스 국빈방문의 성과는 특정 산업이나 협정 하나에 국한되지 않는다. 안보에서는 군사협력의 제도적 기반을 강화하고, 경제에서는 AI·반도체·양자·원자력·바이오 등 미래산업의 연결고리를 확대했으며, 문화와 청년·인적교류에서는 양국 국민이 직접 체감할 수 있는 협력의 폭을 넓혔다.
무엇보다 지난 4월 마크롱 대통령의 방한과 이번 이재명 대통령의 프랑스 방문으로 5개월 만에 상호 국빈방문이 완성됐다는 점은 양국 정상 간 신뢰가 실질적인 국가 간 협력으로 이어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 대통령은 이어 프랑스 하원의장 면담을 통해 경제·방산 협력에 대한 의회 차원의 지지를 당부하고, 프랑스 동포들과의 오찬간담회에서 현지 동포들의 목소리를 청취할 예정이다. 또한 OECD 사무총장을 만나 한국의 OECD 가입 30주년을 계기로 미래 성장동력 창출을 위한 협력방안을 논의하며 프랑스 국빈방문 일정을 마무리한다.
한–프랑스 수교 140년의 역사가 ‘우정과 연대’의 시간이었다면, 이번 국빈방문은 그 신뢰를 안보·첨단기술·경제·문화·미래세대의 공동 성장으로 연결하는 새로운 출발점이라는 데 의미가 있다.




